2007년 5월 7일 월요일

학생은 문제 푸는 기계가 아니다


학생은 문제 푸는 기계가 아니다.


        민사고 입시를 말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민사고 입시가 사교육을 조장한다고들 말한다. 민사고 입학을 준비하는 학생들이나 그들의 부모들은 민사고 입시는 원칙도 없고 제멋대로이고 종잡을 수 없다고들 말한다. 민사고 입학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잘 해야 하고 그러자면 평범한 가정에서는 사교육비를 감당할 수 없어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사실인가. 민사고 입시는 분명 다른 일반 고등학교의 입시와는 다르다. 민사고 입시요강에는 점수로 계산하는 방법이 없다. 다만 무엇을 전형의 자료로 삼는다는 말이 있을 뿐이다. 아마도 이런 입시요강 때문에 학생이나 학부모들은 무엇을 준비해야 할 지 모른다고 말하고 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잘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민사고 입시요강에 빠져있는 성적산출방법이 주를 이루는 입시요강이 다른 학교들의 입시요강이다. 과학과나 외국어고의 10여 페이지가 넘는 입시요강의 대부분은 성적 산출 방법에 대한 설명이다. 즉 학생이 가진 모든 것에 대해 점수로 어떻게 계산하는가에 대한 것이다. 이런 학교에 입학을 준비하는 학생은 편리하다. 자신이 가진 지표를 공식에 대입해보면 그 결과를 점수로 알 수 있다. 명쾌하다. 당락을 자신이 점쳐볼 수 있다. 그러면 학교는 학생을 선발하는데 있어 어떤 일을 하고 있는 것인가. 많은 지원자들의 서류를 점수계산기계에 집어넣고 기다리면 된다. 그 학생이 학교의 교육이념을 이해하고 그 학교의 교육방법에 동의하는지 안하는지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물론 면접을 통하여 파악할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지만 이미 모든 것이 점수로 계산된 이후의 면접이라는 것이 어쩌면 형식적인 단계에 불과할 수 있다.

        학교가 학생을 선발하는데 있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선발의 편리성과 공정성(?)이라는 것으로 실제 학생들의 능력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한다. 모든 덧이 점수로 계산되어 학생들이 수치로만 보이는 입시전형에서 학생의 모습은 없다. 다만 숫자로 존재할 뿐이다. 이런 방법으로 과연 그 학교에 적합한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가. 소위 입시의 구설수에 오르내리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올바른 학생을 선발했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민사고 입시에서는 학생을 수치로 계산하는 일은 없다. 학생이 제출한 모든 자료를 입학전형위원들이 모여서 검토하고 가장 적합하다고 판단되는 학생을 선발한다. 때로는 가시적으로 보이는 지표가  우수한 학생이 떨어질 수도 있다. 소위 토플 만점자도 떨어지고 전교 1등을 놓친 적이 없는 학생들도 떨어진다. 민사고가 학생의 능력을 판단하는 기준은 점수가 아니라 실제 능력이다. 토플 만점의 벙어리는 필요 없다. 전교 1등의 창의성 제로인 학생은 필요 없다. 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다는 것은 그 노력이 가상할지 모르겠으나 그 점수가 곧 능력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민사고가 학생을 판단하는 기준은 어느 하나의 우수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다른 것과 어떤 관계에 있는가이다. 하나를 잘하기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는 학생은 전문기술자는 될 수 있을지언정 사회를 이끌어갈 리더는 될 수 없다.

        모든 시험에서 우수한 점수를 받아야 한다면 학생들은 아마도 질식해 죽을 것이다. 그런 능력을 가진 학생이 얼마나 되겠는가. 모두 다 1등을 해야 하고 모두 다 만점을 받아야 한다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좌절하고 말 것이다. 민사고는 만능의 학생을 선발하지 않는다. 자신이 재능있는 분야에서 우수한 능력을 보여주고, 기타 분야에서 리더로서 자리하기에 부족하지 않을 교양을 갖추기를 바란다. ‘모든 것을 잘 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아무것도 잘하는 것이 없다’라고 말할 수 있다. 민사고가 모든 입학전형에서 점수로 계산한다면 아마도 지원자들은 점수를 높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점수 1점 차이에 따라 많은 것이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사교육을 조장한다는 말을 들을 때는 이런 점 때문일 것이나 민사고 입시에서는 점수 1점 차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사교육을 통해 단기간에 길러지는 것이 아니다. 평소에 꾸준한 독서와 사고를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다. 민사고는 가장 정상적인 교육시스템에서 끊임없이 자기를 계발하려고 노력하는 인재를 원한다. 점수 높은 모범생(?)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매년 4월이 되면 미국의 각 대학들의 정시전형 결과가 발표된다. 민사고 국제반 전원이 명문대에 합격했다는 기사가 빠지지 않고 실린다. 그런 기사를 보면서 많은 분들이 의아하게 생각한다. 어떻게 하나도 빠지지 않고 전원이 다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었을까. 서울대는 과연 몇 명을 보냈을까. 하지만 국내대학 특히 서울대 진학결과를 보곤 실망한다. 실제 10명이상 합격한 해가 없다. 과연 민사고 학생의 능력이 그만큼 밖에 되지 않아서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분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미국과 한국의 대학입시제도를 살펴보면 반드시 그렇지 많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국내대학의 입시요강을 보면 국내 고등학교의 입시요강과 마찬가지로 성적을 산출하는 공식으로 가득 차 있다. 모든 학생들의 자료를 점수로 계산한다는 원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등학교와 마찬가지로 이런 방법으로 학교에 적합한 학생을 선발할 수 있을까. 그것이 과연 학생을 선발하는 최선의 방법일까. 신문 기사에서는 가끔 이공계 학생들의 수학 또는 과학 능력이 현저하게 떨어져 대학 수업을 진행할 수 없다고도 하고, 인문계열 학생들 중에서는 영어 해독 능력이 않되 원서 강독을 할 수 없다고도 하고, 자기 이름을 한자로 쓰지 못하는 학생도 있다고도 하고 여러 가지 학습능력에 대한 불만을 들을 수 있다.

        과연 그 대학에서는 그 학생을 잘 선발했다고 생각할까. 우수한 학생을 선발했다고 자랑스러워할까. 아마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런 학생을 그 학교는 선발할 수밖에 없는가. 그건 아마도 학생이 보여준 점수가 다른 학생보다 높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도 그 대학 그 학과에서 원하는 과목의 점수가 아니라 일반적인 점수가 그랬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외국대학의 원서를 작성하는 과정을 지켜보면 어떤 외국대학도 입시요강이라는 것이 없는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입학전형의 원칙이 있을 뿐이다. 어떤 자료들을 평가하고 어떻게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정도의 안내를 하는 것이 전부이다. 나머지는 학생의 자율적인 판단으로 그 대학에 지원하는 준비를 한다. 더 높은 점수를 얻기 위해 다른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균형있는 공부를 하고 자신의 강점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민사고 학생이 진학한 미국의 어떤 대학에서도 학생의 학업 능력이 떨어져서 민사고 학생을 잘못 선발했다고 하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학생들이 너무나 잘 공부를 해 주어서 후배들을 더 많이 선발하고 싶다고 하면서 학교를 방문한다. 

        많은 고등학생들은 고등학교 3년 내내 대학입시 준비를 한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바로 사회에서 제 역량을 펼치기에는 부족하기 때문에 대학에서 더 높은 공부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고등학교는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학교일 수밖에 없다. 민사고도 예외는 아니다. 민사고도 대학입시를 준비시키는 학교이다. 그러나 많은 고등학교들이 고등학교 교육을 대학입시준비에 모두 쏟아 붓고 있다. 대학에 들어가서 더 수준 높은 공부를 할 수 있는 준비를 시키는 것이 진정한 대학입시 교육이라고 할 때 이는 대단히 불행한 일이다. 고등학생들이 3년 내내 점수를 얻기 위한 공부를 한다. 교과서가 어디 있는지 모른다. 3년 내내 문제집을 끼고 문제를 푼다. 문제 푸는 기계가 된다. 이해는 하지 않아도 된다. 정답만 맞추면 된다. 그러면 우수한 학생이고 좋은 대학에 진학할 확률이 높아진다. 그렇게 문제 풀이만 하다가 간 대학에서 수준 높은 공부를 할 준비가 안 되어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대학 생활은 공부가 아니라 여러 가지 활동이 주를 이룬다. 우리나라 대학생들은 공부는 별로 안하고 논다고 한다. 외국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공부하는데 바빠서 놀 시간이 없다고 한다. 무슨 차이인가. 점수 따는 공부해서 들어간 대학과 공부할 준비를 갖추어서 들어간 대학에서의 생활의 차이이다.

        그러나 정말 학생들이 이렇게 점수 따는 교육을 원하는가. 그것이 옳다고 생각해서 학생들이 그렇게 하고 있는가. 아니다. 학생들은 공부하고 싶어한다. 점수 따고 싶어하지 않는다. 점수는 학습의 결과이지 그것이 과정이고 목표일 수는 없다. 학생들도 안다. 그러나 학생들은 오늘도 점수 따는 연습을 한다. 왜. 대학입시가 그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악순환이다. 대학은 입시의 공정성 때문에 학생을 점수로만 판단하려하고, 학생은 그 점수에 소위 목매달아 점수 따는 기계가 되어가고, 그렇게 입학한 대학에서는 학업 능력 떨어지는 학생들이 입학했다고 불평하고, 과연 무엇이 문제일까. 학생도 그런 점수 따는 공부 원하지 않고, 대학도 그렇게 점수 따는 연습만 해서 학문을 할 준비가 되지 않은 학생을 선발하기를 원하지 않는데, 아직도 많은 고등학생들은 점수 따기 위해 밤을 세우고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다. 우리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학생들이 점수 때는데 급급해서 정말로 배워야 할 것들을 배우지 못하고 시들어가는 모습을 더 이상은 보아서는 안 된다. 학생들이 원하는 공부를 원하는 수준까지 학습하고 그 결과로 상급학교에 진학에서 더 높은 학문을 할 준비를 할 수 있도록 점수기계를 버려야 한다. 민사고를 희망하는 학생들이 밤을 세워가며 점수 올리기에 급급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민사고가 학생을 선발하는 방식이 그렇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점수에 연연한다. 능력의 차이라는 것은 큰 범위에서 인정하지만 점수 1점 또는 0.5점의 차이가 학생의 진정한 차이라고 판단하지 않고 있는데도 이런 점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아주 중요한 시기에 점수 따기에 급급해서 많은 것을 놓치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다. 아마도 민사고 이후 국내대학에 진학할 때를 대비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학생들이 진정한 학문을 할 수 있도록, 진정한 공부를 할 수 있도록 고등학교이든 대학이든 학생을 점수로만 판정하는 입시제도는 폐기해야 한다. 모든 학교들은 그 학교의 학생을 선발하기 위한 차별화된 선발 방식을 도입해야 하고, 그 선발 방법은 점수로 판단하여 줄 세우기가 아닌 진정으로 학생의 능력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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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사관고등학교 부교장 엄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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