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5월 7일 월요일

붕어빵은 미래사회를 이끌 수 없다


붕어빵은 미래사회를 이끌 수 없다.


        교육의 획일화를 말할 때 흔히 붕어빵 교육이라고 말한다. 모든 학생들에게 같은 내용을 같은 방법으로 교육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붕어빵과 같이 틀에 박힌 학생일 뿐이다. 붕어빵과 같이 같은 모습으로 같은 생각만을 하는 학생들로 우리 사회가 넘쳐 날 때 과연 그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사회의 건강성을 유지하고 생존력을 고양시키는 것은 사회의 획일성이 아니라 사회 구성원 하나하나의 건강한 다양성이 존중되는 것이다. 교육을 통하여 건강한 사회를 구성하고자 할 때 그 구성원이 되는 학생들을 붕어빵처럼 획일적인 모습으로 만들어서는 절대로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 낼 수 없을 것이다.

        산업에서 가장 경제적인 제품을 만들어 내는 방법은 대량생산일 것이다. 즉 규격화된 제품을 만들어 낼 때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의 경제성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과연 산업에서의 경제성과 마찬가지로 대량생산에 의한 규격제품을 양산하는 것이 경제적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산업에서의 생산이 소비를 전제로 한 대량생산이라고 할 때, 교육에서의 생산도 산업과 마찬가지로 소비를 전제로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과연 교육의 결과를 소비하는 주체들이 규격화된 제품을 선호할 것인가 따져 보아야 한다. 어떤 교육의 결과를 소비하는 주체도 평준화에 의해 대량생산된 규격제품인 붕어빵을 선호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이 교육에서 바라는 제품은 대량생산에 의한 규격제품이 아니라, 주문형 맞춤 생산에 의한 다양한 제품일 것이다.

        우리 교육의 현실은 붕어빵과 같은 규격제품을 만들어 내는 데 너무 치중하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규격제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당연하게 공정이 까다롭지 않다. 일관된 시스템에서 공정을 거치기만 하면 대량으로 생산할 수 있는 것이 규격제품이다. 편리할지 모르겠으나 이런 규격제품화한 붕어빵들이 사회적으로 잘 기능할 것이라고는 아무도 자신할 수 없을 것이다. 교육은 시대에 따라, 사회적 요구에 따라 변해야 한다. 그런데 그 변화의 속도가 예측불가일 정도로 빠르다. 규격제품을 만들어내는 일관공정을 가지고는 이 변화에 즉각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더 이상 붕어빵을 찍어내는 교육방법으로는 사회변화의 주체들을 길러 낼 수 없는 것이다. 더 이상 교육이 사회 변화에 적응하고 그 변화를 이끌어 갈 주체들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미래가 불투명한, 사망선고를 받고 그 때를 기다리는 암울한 사회가 될 것이다.

        많은 경우 조금 다른 교육을 하고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내면 문제가 있는 교육으로 치부해버린다. 현재의 교육제도 하에서 그러한 다른 방법들로 인해서 만들어진 다른 결과들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리하여 그런 다른 교육을 하는 학교들의 교육방법이 틀린 것이라 전제하고 같아지라고 요구한다. 교육의 수준을 아래로 끌어내려 가장 낮은 수준에서 같아지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렇게 모든 학생들을 같은 수준으로 만들어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 과연 올바른 교육인가. 교육이 해야 할 일은 그와는 정반대로 모든 학생들을 더 나은 수준으로 끌어올려 높은 수준에서 같아지기를 요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차들을 보면 모든 차들이 그 차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필요에 따라 다양화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큰 차가 필요한 사람은 큰 차를 몰고, 작은 차가 필요한 사람은 작은 차를 몬다.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람은 비싼 차를 몰고, 경제적 능력이 낮은 사람은 그에 맞는 가격의 차를 몰고 다닌다. 아파트도 마찬가지고 입고 있는 옷도 마찬가지다. 모두 자기 필요에 맞는, 자기 경제 능력에 맞는 아파트와 옷을 입고 다닌다. 일반화해서 말하면 세상의 모든 것은 필요와 능력에 따라 소비되어진다. 그런데 교육은 그러지 말라고 한다. 모든 사람이 같은 교육을 받아야 옳다고 한다. 정말 옳은 것인가.

        교육도 교육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필요와 능력에 따라 다른 교육을 하여야 한다. 다른 교육만이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 같은 교육으로는 아무리 좋은 재료가 있다고 해도 같은 결과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민사고와 관련하여 국회에서 모 정당과 세미나를 한 적이 있다. 그때 패널로 참가했던 어느 분이 말씀하시길 ‘민사고 학생들이 전국에서 선발된 우수한 학생들이기 때문에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지, 민사고 자체에서 한 것이 뭐가 있느냐’고 하셨다. 즉 좋은 씨앗 가지고 어느 누가 그런 결과 못 만들어내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민사고 학생들 우수한 학생들이라는 것 부인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럽게 얘기합니다. 좋은 씨라는 것 맞습니다. 그러나 그 좋은 씨를 아무 밭에나 뿌린다고 다 잘 자라던가요. 좋은 씨는 그 씨앗을 잘 키울 수 있는 좋은 밭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고 말했다. 민사고의 다른 교육방법과 학생들을 교육할 수 있는 역량있는 교사진들이 있기에 학생들이 가진 능력을 꽃피울 수 있는 것이다. 많은 분들이 민사고의 교육 결과에 놀라워하면서 그것이 아이들이 가진 원래의 역량 때문 만이거나 사교육의 결과라고 폄하하여 말한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씨도 그 씨가 잘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있어야만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민사고는 학생들의 필요와 역량에 맞는 교육을 하고 있다. 그 결과로 다양한 모습의 학생들을 길러내고 있는 것이다.

        다른 교육을 하면 차별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어느 교육자도 학생을 차별하지는 않는다. 다만 학생들의 능력의 차이, 개성의 차이, 꿈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 차이에 따른 교육을 하고자 한다. 모든 학생들은 다 다르다. 그 다름을 인정하고 차이에 따른 적합한 교육을 할 때 붕어빵을 만들어내는 기계적인 교육이 아니라 미래 사회의 주역을 길러낼 수 있는 올바른 교육을 하게 되는 것이다. 민사고는 학생들의 다름에 기초한 다른 교육을 하고 있다. 미래 사회를 선도할 수 있는 지도자를 길러 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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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사관고등학교 부교장 엄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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